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민(농구)/선수 시절 (문단 편집) == 이적과 마찰 == [[파일:서울 삼성의 유니폼을 입은 이상민.jpg]] 누구나 현대-KCC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상민은 KCC에서 은퇴하지 못했다. [[서장훈]]이 FA로 영입되는 과정에서 '''보상선수'''로서 이상민이 삼성 썬더스로 이적했던 것이 원인인데, 이 때문에 KCC는 큰 비판을 받았다. 당시 FA 보상선수에서 제외되는 보호 선수는 3명까지 지정할 수 있었는데 우습게도 FA로 이적해온 선수는 자동 보호 선수로 지정되며, 보호 선수 3명에 자동 포함되었다. 즉, 당시 KCC가 FA로 데려온 [[서장훈]], [[임재현(농구)|임재현]]은 자동으로 보호선수가 되고, 나머지 보호 선수로 선택할 수 있는 선수는 한 명뿐이라는 것. KCC엔 이상민이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이 있었기에 둘 중 하나는 보호 선수에서 제외해야 했다. 그런데 추승균 역시 노장이라 볼 수 있지만 이상민보다 2살 어렸기에 효용 가치는 추승균이 더 크다고 KCC쪽에서는 봤고, 그래서 이상민은 보호 선수에서 제외되었는데, 당시 감독인 [[허재]]의 말에 따르면 '삼성이 설마 노장인 이상민을 고르겠어?' 라는 생각으로 보호 지정을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추승균을 풀었다면 삼성은 100% 추승균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야말로 KCC 입장에서는 황당한 FA 규정-- 이 때 허재 감독은 임재현과 서장훈을 데려오면서 기존 선수단+새 용병들을 합쳐 반지 원정대를 구성하려고 했는데, 이상민의 이적으로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당시 삼성은 이상민보다 신인 선수 지명권을 우선 요구했지만, KCC가 가지고 있던 신인 선수 지명권은 [[하승진]]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지명권이었기에 그것을 거부[* 실제로 1픽에 걸리면서 [[하승진]]을 지명한다. 그리고 서장훈은 하승진과의 출전시간 분배 문제로 트러블이 생기며 전자랜드로 이적한다.], 결국 삼성은 이상민을 FA 보상 선수로서 데려갔다. 저 때 이상민의 입단식 사진을 보면 단장과 감독은 웃고 있지만 [[이상민(농구)|이상민]]의 표정은 좋지 않았으니, 이상민 본인의 심정은 상당히 복잡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KCC 구단은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서초동 KCC 본사로 이상민 팬들이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이 이적에 대한 파장은 컸다. 다만 무지성의 이상민 팬들이 허재 감독까지 비난하였는데 보호 선수로 묶고 안 묶고는 프런트의 일이지 감독과는 상관이 없다. 또한 더 깊게 파고들면 KBL 규정의 문제로 봐야하는 것이다.] 이상민의 빈자리를 채운 [[임재현(농구)|임재현]]은 임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이상민보다 못한 활약을 보인 데다, 이적한 이상민이 선봉장으로 그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KCC를 격파하는 상황까지 오자 이상민을 떠나게 만든 KCC는 희대의 뻘짓을 저질렀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남의 레전드를 그냥 데려간 삼성 역시도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런데 사실 욕먹을 일이 아니긴 하다. 서장훈을 내주고 이상민을 가져간 것이니-- 그렇지만 삼성은 기존의 [[강혁(농구)|강혁]]-[[이정석]]에 이상민을 합해 3가드 라인을 구축하여 2년 연속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에 70여명의 팬들이 서초구에 위치한 KCC 본사 앞에서 시위를 펼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KCC 입장에서 보자면 보호 선수로 이상민 대신 [[추승균]]을 지키고 신인 선수 지명권도 지킨 건 결과적으로 대성공이 되긴 했다. 임재현은 FA로 이적한 첫해에 그야말로 임봉사 모드로 까였지만 이적 2년차부터는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며 들개같이(...) 뛰어다니며 좋은 활약을 보였고 이상민 대신 지킨 [[추승균]]은 3년 동안 팀의 기둥이 되어 주었으며 결국 이 둘이 팀이 두 번의 우승을 거두게 만든 공신이 되었기 때문. 거기다 삼성이 이상민 대신 달라고 한 신인 지명권을 지킨 끝에 그걸로 [[하승진]]을 뽑으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결국 이상민의 이적 문제는 팀과 선수의 입장이 갈리며 생긴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는 것. KCC로 온 서장훈은 이상민과의 플레이를 원했다는 인터뷰를 해서[* 둘은 전술했듯 연세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게다가 서장훈은 앞서 SK에서 FA 자격으로 삼성으로 옮길 당시 본의 아니게 선배 우지원을 날려버렸던 터라(삼성이 우지원을 보호선수에서 제외했고 SK가 그를 보상선수로 지명한 뒤 곧바로 김영만과 맞트레이드했다.) 이상민이 자신 때문에 팀을 떠나게 된 것이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결국 서장훈은 2년도 안 되어 [[하승진]] 등장으로 인한 출전 시간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며 전자랜드로 트레이드 된다. 하지만 서장훈은 전자랜드로 이적하여 원하던 출전 시간을 보장받으며 좋은 성적을 내었고 서장훈과의 트레이드로 데려왔던 강병현은 KCC 우승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서로에게 윈윈이 트레이드였다.][* 이때의 일로 애먼 서장훈까지 이상민의 팬클럽인 이응사에게 욕을 먹었고, 결국 이 사태 이후부터 보호 선수가 3명에서 4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상민이 삼성으로 건너간 후 기사를 통해 KCC에 대해 비판했고, 2010년 은퇴를 결정했을 때 KCC가 일방적으로 등번호 11번의 [[영구 결번/스포츠|영구 결번]]을 선언하면서 이상민과 KCC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나고 만다.[* 원래 삼성에서 이상민의 은퇴를 기념해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하려 했으나 KCC가 영구 결번을 선언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2018-19 시즌까지 삼성에서 11번을 단 선수는 없었다. 도중에 서장훈과 이상민의 번호로 11번을 영구적으로 결번하려 했으나 서장훈에게 삼성은 잠시 거쳐가는 팀 정도였고 이상민은 KCC에서 이미 결번이 되어있자 발표 몇 시간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결국 2019-20 시즌, 감독 이상민의 포지션인 포인트 가드로 뛰는 연세대 후배 [[천기범]]이 삼성의 새 11번이 됐지만 2022년 음주운전 사고로 대형사고를 치면서 11번의 주인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2023년 6월 26일 이상민이 KCC의 코치로 복귀하면서 그 동안의 섭섭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풀린 것으로 보인다.] [[추승균]]이 비하인드 썰을 풀었는데 이 때 KCC는 삼성이 이상민을 선택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한다.[* 참고로 이상민이 떠나기 전에 추승균이 먼저 안준호 감독에게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 그대로 설마가 현실이 되어버렸고, 추승균, 서장훈, 이상민 셋이서 그 날 과음했다 밝혔다. 그리고 이상민은 사실 이때 은퇴까지 생각했는데 주위에서 말렸다 한다. 특히나 서장훈이 엄청 힘들어했는데 이상민과 뛰고싶어서 KCC로 왔는데 이상민이 본인 때문에 떠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이상민 이적 후에 선수단 분위기도 엉망이 되어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